BK PLUS 21 - 14호웹진

참여대학생 수기

화공생명공학부 장지한 참여대학원생

나의 과거, 현재, 미래. BK21 플러스

저는 어려서부터 자연에 흥미가 많았습니다. 각종 곤충과 식물들에 빠져 살았고, 무엇이든 섞고 분해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과학을 전공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굳이 화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 과학실에서 약품 두 가지를 섞었을 때 색이 갑자기 변하거나, 거품이 나거나 했던 실험이 가장 화려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어린 마음에 그러한 실험들이 막연히 가장 ‘과학자스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다소 부끄러운 이유로 화학을 좋아하고, 전공으로 삼게 되었지만 화학을 공부하면서 한 번도 흥미를 잃거나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보이는 사물과 물질들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다루는 학문이 화학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연구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맡게 된 연구 주제는 다소 우연적인 경위로 선정되었습니다. 금속 나노입자를 활용한 광학 센서 분야를 주로 연구하는 저희 연구실의 특성 상 저는 금나노입자를 활용한 쉽고 빠른 물 속 중금속 이온 검출 방법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하던 중 물과 올리브유 사이의 계면을 이용하려 하던 순간, 물속의 중금속 이온이 올리브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현상을 해결하지 못해 중금속을 검출하려던 계획은 한동안 난항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이 현상을 역으로 이용해서 중금속을 제거할 수 있는 기술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리브유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우 친환경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교수님을 비롯한 저희 연구원들에게서도 친환경적인 중금속 제거 기술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서 얻어진 결과로는 가장 먼저 국내 특허를 출원하였습니다. 연구원으로써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결과의 새로움에만 사로잡혀 실질적인 생활의 편리를 제공해야만 하는 공학인 본연의 의무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 역시도 새로운 결과를 얻는 데에만 집착하여 이 연구가 정말로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 소홀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허 출원을 준비하면서 기존 기술과 문헌들을 꼼꼼히 조사하고, 발명신고서 작성을 통해 제 연구결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연구원이자 공학도로써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변리사님과의 토의는 하나의 기술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와 기술이전의 개념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올해 3월에 ‘친환경 유기용매를 이용한 중금속 이온의 제거 방법 및 장치’라는 제목으로 특허를 출원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연구결과를 통해 2017년 춘계 한국화학공학회(KiChe)의 에너지·환경 세션에서 구두발표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실 대학원에 입학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저는 학술대회에서 구두발표를 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경력이 길고 좋은 연구 결과를 가진 다른 연구원들과 같은 장소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 매우 떨리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던 학술대회 발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발표 실력 역시도 연구 실적만큼이나 개인의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연구 결과라도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고 포장하느냐에 따라 가치 있어 보이게도, 가치 없어 보이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도표와 그림은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은지, 도입부는 어떻게 구성해야 참석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지, 제스쳐와 시선 처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을 고민하는 것은 연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고되고 연습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큰 무대에서 발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기에 한국화학공학회에서의 구두발표는 정말로 가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학술대회 발표 이후에는 얻어 낸 실험 결과들을 모아 정리하면서 논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기존에 논문을 작성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실험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도표를 구성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단어 하나를 선정하는 것조차 정확하고 과학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단어를 선정해야하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실험과 과정을 한 사람이 도맡아 하는 것은 힘들뿐더러, 본인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구 책임자이신 교수님을 비롯한 공동 연구자들과의 충분한 토의와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평소 다뤄오지 않던 시뮬레이션 파트를 맡아주신 본교 기계공학과 연구팀에게서는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기술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많은 토의를 거쳐 제가 주저자로 작성한 논문은 현재 네이쳐 출판 그룹(NPG)의 한 자매지에서 심사, 수정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다른 어떤 성과보다도 제가 더욱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우연한 현상 관찰, 특허 출원, 학술대회 발표, 논문 작성이라는 일련의 학술적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연구 생활의 초입 단계에 있는 제가 체계적인 연구와 그 연구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미리 경험했다는 것은 앞으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 혼자의 힘으로 이러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연구실은 보통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양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우리 연구실에서 기존에 다뤄 오지 않던 새로운 실험을 진행해 오면서 수없이 장애물에 부딪힐 때마다, 이 분야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다른 연구팀들의 조언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BK21 플러스 사업단에서 주관하는 각종 세미나들이 국내, 외 연구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학문 간의 경계를 없애고 다양한 분야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현재 연구의 추세에 발맞춰, 금속 나노입자를 활용한 광학 센서를 연구하는 저희 연구실도 암 진단과 치료, 세포 이미징 등 바이오메디컬 분야로의 적극적인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기합성과 광학 시스템만을 다뤄 오던 저로써는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는 법이나 동물실험 등의 전문적인 생물학 연구에 필요한 지식을 얻을 곳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우수한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오고 있는 가톨릭대학교와의 공동 세미나를 통해 생물학과의 융합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금속 나노입자를 생체 내에 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생체 독성과, 실제 동물 실험에 앞서 그 결과가 인간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설정하는 동물 모델, CT, MRI와 같은 기존 이미징 기술의 원리 등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또한 BK21 플러스 사업단에서는 해외 대학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글로벌 인재 육성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에는 DNA를 이용한 나노입자의 자가 조립에 있어서 세계적 권위자이신 뉴욕 대학의 David J. Pine 교수님을 초청하여 강연을 열었으며, 올해 8월에 개최된 제 2차 서강-UPenn 공동 워크샵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대학교 공학부 교수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워크샵에서는 나노 기술 뿐만 아니라 초음파를 이용한 이미징, 기능성 섬유를 이용한 웨어러블 소자, 올려진 세포의 대사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칩 등등 각종 분야에서의 첨단 기술들이 소개되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술은 인간의 각종 기관들을 구현한 organ-on-chips를 연결시켜 시스템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human-on-chips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었습니다. 이러한 발표들을 들으면서 가장 크게 놀랐던 점은, 해외 석학들의 연구 과정에 특별히 값비싼 장비나, 어려운 이론이 요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남들이 하지 못하는 발상의 전환과,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큰 목표로의 도전이 더욱 돋보였습니다. 이처럼 BK21 플러스 사업단의 도움으로 우수한 해외 연구진을 비롯한 석학들과 교류함으로써 글로벌 연구 트렌드, 좋은 연구자로써의 자세와 창조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제가 이러한 경험을 쌓는 것은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BK21 플러스 사업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저에게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심지어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 따로 살 곳을 구해야 하고, 아버지께서도 제 학부 졸업 시기에 맞춰 정년퇴임을 하신 저로써는 더더욱 대학원 진학을 쉽게 결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BK21 플러스 사업팀에서 제공하는 재정적 지원을 통해 갈등하시던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고, 저 역시도 재정적 부담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기뻤습니다. 또한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연구비는 단지 조건 없는 호의가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더 질 좋은 연구 결과를 내어야 하는 책임이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처럼, 제게 주어졌던 연구비는 제가 자꾸만 해이해 지려고 할 때마다 저를 다잡아주고, 다시 한 번 연구실로 이끌어 주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BK21 플러스 사업단에서 제공하는 재정적 지원은 제게 현재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더욱 감사한 것은 제가 미래에도 연구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석사 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해외 유학이나 국내 박사 학위 취득을 통해 평생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구자로써 불확실한 미래와 재정적 환경은 제가 그러한 꿈을 확신하는 것을 자꾸만 망설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스스로를 갈고 닦고,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연구비의 책임을 배울 수 있게 해 주고,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준 BK21 플러스 사업단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BK21 플러스 사업단은 저에게 체계적인 ‘과거’를 쌓아 올려 우수한 성과를 거두게 하였고, ‘현재’의 대학원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앞으로 더 좋은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미래’의 꿈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연구자로써의 경력을 시작함과 동시에 이런 BK21 플러스 사업단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저에게는 매우 큰 행운이자 영광입니다. 제가 받았던 수많은 도움과 기회들을 우수한 연구 성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와 같이 연구자로써 큰 꿈을 가진 수많은 대학원생들에게도 꼭 이러한 기회들이 주어지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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